구미

매년 음력 9월 6일 열녀 향랑추모제 지내며 정신 후대에 기려

뉴스일번지 2010. 10. 17. 13:57

조선 숙종 때 형곡동에서 박자신의 딸로 태어나 출가했으나, 시부모와 신랑(임칠봉)의 극심한 학대와 구박으로 친정으로 쫓겨났으나 정조를 지켜다가 낙동강 소(沼)에 몸을 던져 정절을 지킨 열녀 ‘향랑’의 정신을 후대에 기리기 위해 사당을 건립하여 위패를 모시고 이후 매년 음력 9월 6일 구미시와 열녀 향랑추모회에서 제사를 올리고 있다.

 

 

 

음력 9월 6일인 10월 13일 오전 11시 열녀 향랑추모제에는 추모회 관계자, 구미시와 형곡1, 2동 관계자, 시민 등이 참석한 가운데 엄숙하고 경건한 자세로 추모제를 지냈으며, 구미시의회 박교상 의원도 참석했다.

▲ 향랑의 묘

 

열녀 향랑은, 조선 숙종 때 형곡동에서 박자신의 딸로 태어나 일찍이 어머니를 여의고 17세 되던 해 이웃에 사는 임천순의 아들 14세 임칠봉에게 출가했으나, 출가 후 시부모와 신랑의 극심한 학대와 구박에도 하루같이 행실이 바르고 정숙했으나 친정으로 쫓겨나게 되어 의지할 곳이 없게 되었다.

 

 

친정의 삼촌 등 어른들께서 재가할 것을 권했으나, 향랑은 “내 비록 상것이나 이부종사야 하오리까”라고 주장하면서 정조를 지켜 오다가 숙종 28년 오태동 지주중류비 앞 낙동강 소에 몸을 던져 정절을 지켰다고 한다.

 

 

당시 선산부사 조구상이 향랑전을 짓고 삼강행실도의 예에 따라 의열도를 그려 조정에 품신하여 숙종 29년 정려가 내려졌다.

 

 

이에 1992년 구미문화원에서 묘역을 단장하고, 매년 음력 9월 6일 구미시와 열녀향랑추모회에서 제사를 올리고 있으며, 그 정신을 후대에 오래도록 기리고자 지난 2006년 5월 이 사당을 건립하여 향랑의 위패를 모시게 된 것이다.